제25회 품바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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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소개

거지성자
최귀동 할아버지

최귀동 할아버지의 베푸는 삶은 오늘날 세상 사람들에게 기부문화와 봉사문화를 정착시켰습니다. 베푸는 품바 로서 세상을 향한 그의 사랑이 “음성품바”를 통해 널리 퍼지고 사람들이 음성을 찾아오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 니다. 최귀동 할아버지가 있는 음성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로 뻗어 나가 인류애를 실천하는 자랑스럽고 행복한 고장입니다.

사진1 1920년 최귀동 할아버지 모습(왼쪽 사진) · 최귀동할아버지와 오웅진 신부(오른쪽 사진)

포대자루를 매고가는 최귀동 할아버지를 보고 움막으로 따라간 꽃동네 오웅진 신부는 깜짝 놀랐습니다. 좁은 움막 안에는 몸이 불편하고 배가 고픈 18명의 걸인이 살아가고 있었으며 병이 깊은 걸인들은 동냥할 힘조차 없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최귀동 할아버지는 포대자루에 동냥밥을 얻어 말없이 죽어가는 걸인들에게 밥을 먹였습니다. 최귀동 할아버지 와 오웅진 신부의 운명적 만남으로 꽃동네가 시작되었습니다.

40여 년 동안
사랑을 실철했던
무극천 다리

최귀동(베드로)할아버지가 40여 년 동안 사랑을 실천했던 무극천 다리. 이 다리 밑에서 40여 년 동안 남는 밥만 얻어먹다가 사랑을 실천하던 중 1976년 9월 10일 무극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한 오웅진 신부와 만났습니다.

어느날 동네 사람들에 의해 다리 밑에서 쫓겨나 용담산 밑에 움막을 치고 생활하게 됩니다. 이 움막 앞에서 한 할아버지와 오신부의 모습이 보입니다. 움막 안에는 얻어 먹을 힘조차 없어 죽어가는 분들이 18명 살고 있었습니다.

이 움막 삶의 현장을 목격한 오신부는 주머니돈 1,300원을 몽땅 털어 시멘트 한 포대를 사서 손수 벽돌을 찍어 76년 10월 5일 교우들과 함께 기공식을 가진 후 76년 11월 15일 다섯칸 부엌 다섯칸의 건물에 이들을 입주시킵니다.

사진2 1980년경 무극다리(1단) · 최귀동할아버지와 동료걸인들의 사진(2단)

숭고한 사랑의 실천으로
카톨릭 대상 수상

무극에서 부잣집 귀한 아들로 태어나 날때부터 귀동이라 불리웠던 대장부가 일본 징용으로 끌려가 심한 고문 끝에 정신병을 얻어 고국에 돌아와 보니 그동안 부모님들은 아편 중독으로 돌아가시고 가정은 파산되어 갈 곳조차 없게 되어 무극다리 밑에 거처를 정하고 살면서 오갈 데 없고 얻어 먹을 수 있는 힘조차 없어 죽어가는 걸인들을 위하여 40여년간 남는 밥만 얻어 그들에게 나눠주었고, 죽으면 양지 바른 곳에 묻어 주었습니다. 그 숭고한 사랑의 실천으로 86.2.15 가톨릭 대상(사랑부문)을 수상했으며, 부상으로 120만원을 받았습니다. 이에 따른 축하잔치가 2.16 무극성당에서 있었는데 청주교구장 정진석 주교, 노건일 도지사, 사단장, 교육감 등 내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무극국교 어린이 고적대의 밴드에 맞추어 카퍼레이드 후 주민들과 함께 축하식을 가졌습니다.

사진3 축하식에 참석한 내빈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

인명은 하늘에 달려 있어

90년 1월 4일 오후 1시 15분 평소 지병인 혈압이 재발하여 인곡자애병원에 모셔진 최귀동 할아버지는 “인명은 하늘에 달려있어” 이 한마디를 조용히 남기고 떠나셨습니다.

84년 2월 28일자로 눈 못보는 형제를 위해 사망 후 안구를 기증한다는 유서를 남겨 27세 된 젊은 청년이 눈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진4 1980년경 무극다리 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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